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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녹색과 찬란한 햇살, 그리고 꽃들의 향연
‘선운사와 도솔암을 걷다’
등록 [ 2014년04월30일 13시40분 ]

주말이라서 인지 오전임에도 선운사의 주차장은 빼곡 복잡하다. 많은 차량, 많은 사람들, 꽃무릇 축제로 행사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여행의 의미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차분하고 조용한 마음을 살찌우는 트레킹은 틀린 듯싶다. 선운산 산길로 들어서면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붉게 핀 꽃무릇의 황홀함에 취해 걱정했던 그런 생각들은 기우에 불과했다.
고창 선운사를 떠올리면 언뜻 봄에 붉은 동백꽃과 가을의 붉은 단풍을 연상하지만 9월의 선운사는 단풍보다 더 멋진 또 하나의 붉은 황홀함에 흠뻑 취할 수밖에 없는 꽃 잔치가 벌어진다. 이 꽃무릇 잔치가 지나야만 서서히 단풍들은 붉게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온통 꽃무릇이 숲속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새벽길을 달려 내친김에 선운산을 다녀오려는 생각으로 왔건만 길섶과 산기슭을 온통 붉게 물들여 숲의 녹색과 찬란한 햇살의 조화로운 황홀경을 보는 것만 으로도 하루해가 부족할듯하여 선운사 경내를 들어가는 것조차 내려올 때로 미뤄버릴 만큼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혀 아름다운 꽃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진기에 담느라 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세속의 여인을 짝사랑하다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백 일만에 피를 토하고 죽은 스님의 애절한 사랑이 깃든 꽃


영화 시상식 행사에서 본 듯한 래드 카펫의 융단을 깔아 놓은 듯 도솔천을 따라 붉은 꽃무릇 군락이 도솔암까지 약 4km 내내 장대한 나무들로 녹음이 짙게 드리워진 평탄한 길 주변에 선운산은 단풍보다 내가 더 예쁘다며 사보타주 하듯 잎 하나 없는 한줄기에 빨강색 하나의 꽃만을 곧게 세운 체 무리지어 도토리 키 재기를 한다. 일명 상사화라 불리는 꽃무릇 천지이다, 그렇지는 안겠지만 들풀보다 더 많게 보일만큼 빨강색의 강렬함이 시선을 다잡는다.

이제껏 그 어디에서라도 이처럼 많은 꽃 천지 세상을 본적이 없다. 꽃의 색깔과 아름다움에 반해 사랑하는 사람의 볼에 살짝 키스라도 하듯 코를 가까이 대어 봤지만 상큼한 향기도 뿌리지 않으면서도 길게 퍼진 수술들은 마치 티아라를 쓴 것 같은 모양의 그 화려함은 다른 꽃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도도함도 있다. 하긴 그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꽃들이 향기까지 뿜어대면 그 황홀함에 이 선운사의 스님들이 어이 견딜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만큼 전해 내려오는 상사화의 플라토닉한 사랑의 스토리텔링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옛날 서로의 사랑이 지극한 부부에게 오래도록 아이가 없어 삼신할멈에게 소원을 간절히 빌었더니 딸 하나를 점지해 주셨다. 늦둥이 외동딸은 얼굴도 곱고 효심도 지극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임종으로 가까운 절에서 극락왕생을 빌며 백일 동안 탑돌이를 하게 되었는데 큰스님의 시중을 들던 젊은 스님이 한눈에 반해 흠모하게 되었는데 그 젊은 스님은 말 한마디 못 시키고 애만 태우다가 그만 백일이 지나 탑돌이를 마친 처녀가 집으로 돌아가자 스님은 절 뒤의 언덕에서 하염없이 그리워하며 백일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피를 토하며 죽었다한다. 

큰스님이 그를 앙지 바른 곳에 묻어주었는데 그 이듬 해 봄 무덤가에 한 송이 이름 모를 풀잎이 싱싱하게 돋아났다. 그러더니 봄이 다 지나갈 무렵 갑자기 그 잎이 사라지고 다시 두어 달 뒤 한여름에 불쑥 꽃대 하나가 올라오더니 붉은 꽃이 곱게 피어났다. 그리하여 그 꽃의 이름을 '상사화'라 하였다. 세속의 여인을 짝사랑하다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죽은 스님의 애절한 사랑이 깃든 꽃, 그래서 그 꽃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꽃무릇의 본명은 석산(石蒜)인데 사람들은 상사화(相思花)라 하기도 하는데 실상은 서로 다른 꽃이라 한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올라와 지고난 후 8월 중순 이후에 분홍색의 꽃이 피며 꽃무릇인 석산은 가을에 잎이 올라와 월동을 하고 봄에 잎이 지고난 후 추석 전후에 붉은색의 꽃으로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다고 해서 상사화라고 하는데 두 종류 모두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건 같지만 꽃 모양이나 잎 모양 피는 시기가 서로 다르다. 상사화의 잎은 좀 넓고 크며, 석산의 잎은 좁다고 한다. 석산과 상사화는 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의 생태적 특징이 있는 수선화과이며 꽃무릇이 주로 사찰의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이유는 뿌리에 있는 독성이 방부효과가 있어 스님들이 탱화를 그릴 때 탱화의 붉은 색에 꽃무릇을 사용하고 뿌리의 즙으로 좀이 슬지 않고 색이 바라지 않도록 칠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산지인 일본에서는 저승길에 피어있는 꽃이라 하여 귀신들을 쫓기 위해 집주변에 심기도하고 꽃잎의 모양이 마치 불꽃같아서 집안에서 피우면 화재가 발생하기 때문에 절대로 집안에 들여서는 안 된다는 미신도 있다한다.

스님의 목탁소리와 염불의 소리가 
허공에 은은하게 울려 퍼짐이 유난히도 청아하게 들리는 도솔암-


하늘은 구름한 점 없이 높고 푸르고 장대하고도 원시적인 녹음 짙은 나무들이 터널을 이룬 넓고 잘 닦여진 도솔천을 거슬러 오르는 도솔암 길을 따라 감에도 좌우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꽃무릇 덕택에 지루한줄 모르며 오르는 중간 중간에 꽃무릇에 묻혀 사진을 담아보는 즐거운 사람들의 표정에서 자연이 사람들에게 주는 기쁨은 어느 것 하나 흘려버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도솔암으로 향하는 중간쯤에는 600백년정도로 추정되는 부챗살 모양으로 장대하게 치솟아 있는 장사송이 의연하게 서있다. 그 옆에는 진흥와이 수도를 했다는 진흥굴에서는 황금빛 찬란한 아주 작은 부처님이 어둠속에서 잔잔한 미소로 반겨주기도 한다.


도솔암으로 향하는 길은 꽃무릇 도 좋고, 녹음 짙은 나무도 좋고, 찬란한 햇살도, 파란 하늘도, 솔솔 불어주는 바람도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다 좋기만 한데 특별히 신체적 결함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 좋은 자연의 품에 안겨 사뿐사뿐 걸어가고 싶은 마음도 생기련만 관광버스 와 승용차를 타고 가야할 만큼 바쁜 사람들 일까? 아무리 조심스럽게 지나간다 해도 걸어가는 여러 사람에 흙먼지 날리는 것이 약간은 짜증스럽기도 하다. 얼마간을 오르니 푸른 하늘아래 선명하게 도솔암이 보인다. 

오르는 내내 붉은 꽃무릇이 한 번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큼 붉은 색에 길들여져 있어선지 도솔암의 은은한 단청색갈이 그리도 신선해 보인다. 암반을 타고 졸졸 흘러내려오는 시원한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을 만큼 가파른 139개의 돌계단을 오른다.

스님의 목탁소리와 염불의 소리가 허공에 은은하게 울려 퍼짐이 유난히도 청아하게 들린다.
주변 환경을 둘러보니 절벽아래에 절묘한 조화로 지어진 암자라서 반공의 울림효과 인 듯 느껴진다. 아래의 암벽에 새겨진 미륵부처는 여느 곳과는 달리 투박스러우면서도 인자한 모습이다. 

유럽의 수많은 성지를 다니면서 성인들의 그림이나 성물에서는 어린양들을 위한 희생과 고통의 모습으로 기억 될 뿐 한 번도 미소 짓는 모습은 본적이 없으나 가끔 마음이 심난 할 때 조용한 산길을 걸으며 들르는 산사에서 인자스럽고 부드럽게 미소 짓는 부처의 모습에서 가끔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내려오는 길은 도솔천의 숲속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 훨씬 낭만적이다.

나무뿌리가 널려있고 돌부리가 솟아있어 잘 살피고 내려와야 하지만 차량의 먼지도 없고 녹음도 우거져 있으며 도솔천의 맑은 물에 머금은 꽃무릇의 싱싱함은 물론 물가에 앉아 발도 담그는 여유로운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선운사는 백제 27대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창건한 고찰로 
고태미가 은은하게 풍기던 천년 사찰로 마음이 머무는 정겨운 곳이었는데-


우리나라에는 천년사찰이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선운사처럼 대웅보전의 기둥은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쓴 고태미가 은은하게 풍기는 사찰은 그리 흔하지 않다. 얼마 전 천년고찰 선운사에 3,000년 만에 한번 핀다는 전설의 꽃 우담바라가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대웅보전의 기둥이 생각 날만큼 고찰로서의 이미지가 좋았다. 불교 법화경(法華經)에 의하면 이 꽃은 신령스럽고 상서로운 꽃이라 하여 영서화(靈瑞花)라고도 부른다. 올라갈 때 꽃무릇의 황홀경에 취해 내려올 때 들리려던 선운사 경내의 왁자지껄하고 술 냄새, 고기 굽는 냄새 풍기는 난장판 같은 장터모습을 보고 아연질색 할 수밖에 없다.

꽃무릇 축제기간이라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천년사찰의 고즈넉한 축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산사에 걸 맞는 조용하면서도 의미 있는 축제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도저히 이 분위기는 아닌 듯싶다. 너무도 세속에 앞장서서 변해버린 선운사의 모습에 그간의 이미지를 산산조각내고 만다. 입구부터 즐비하게 지지고 볶고 튀기고 꼬치고기 굽는 냄새와 막걸리 동동주 냄새가 진동하고 대낮부터 술 취한 행락객이 비틀거리고 지나는 여행객을 호객하고 경내 안에서는 무슨 행사를 하는지 확성기에서 빵빵하게 울려대는 혼란스러움이 천년고찰이라는 이미지는 그 어디에도 없고 가히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변해버렸다. 사진 한방조차 담기가 싫어진다. 둘러보기를 포기하고 허탈과 참담함으로 돌아서며 아마도 또 다시 이곳을 다녀볼 기회는 내 평생 없을 듯싶다.

[글 임용재]
 

김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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